블루스맨 - 감사를 잃지 않는 순례자의 이야기

Posted at 2009/07/28 11:29 // in 일반 그래픽노블/그래픽노블 리뷰 // by 부머


전에 블루스 온 에어라는 윈앰프 방송을 즐겨들었다. 초창기에는 방송지기이신 서정욱님이 직접 방송을 하셨는데. 실시간 방송은 들은 기억이 없지만 알차게 꾸미시려고 1시간짜리 녹음방송을 인터넷에 올려주시면 그것을 다운받아서 종일 반복해서 듣곤 했다. 이후에 서정욱님은 멘트방송을 중단하시고 거의 24시간 블루스 음악을 청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송이 되었다. 최근에 그것마저 중단되었지만, 하루에 이 방송을 듣는 사람만 수천명에 이르렀으니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블루스 온 에어의 로고음악이라고 해야 될까. 중간 중간에 '블루스 온 에어'라고 하면서 방송국명이 이야기될 때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 델타 블루스의 왕으로 추앙받는 '로버트 존슨'의 'Traveling Riverside Blues'였다.

 

코리아하우스에서 이번에 내놓은 블루스맨은 상당히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일단은 1920년대 블루스 음악의 초기 떠돌이 악사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고, 목판 형식의 독특한 그림체도 하나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받아들고 표지를 넘겼을 때 기대했던 이상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로 블루스맨은 총 12챕터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각 챕터는 모두 12페이지로 나눠져 있다. 처음에 낱권으로 나올 때는 4챕터씩 묶어져서 총 3권으로 나왔었는데, 이번에 나온 블루스맨은 이 3권을 한데 모음 완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책 뒷 커버에도 이 점을 지적을 해뒀는데, 이 그래픽 노블은 블루스 음악의 전통적인 12마디 형식(기타치는 분들은 익히 아실 것이고)을 지면 위에 그대로 옮겨두었다. 12챕터 안에 각 챕터 역시 12페이지씩 구성이 되어있으며, 각 페이지는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모두 6개의 패널로 이루어져서 책을 펼치면 12개의 패널이 눈에 들어오도록 되어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희망(HOPE)'마을을 찾은 두 명의 떠돌이 악사. 그 중에서도 기타를 치는 램 타일러의 이야기다. 소개글 등에 나와 있다시피 이 램 타일러는 '희망'을 찾아 머물렀던 '희망'마을에서 살인 사건에 연루되는데, 그 때문에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특히 매력적인 사실은 이 떠돌이 악사에게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왕 사울을 피하여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했던 '다윗'의 이미지가 은근히 겹쳐진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희망 마을에서 음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의 누가복음 3장에서 세례요한이 했던 말씀을 인용하는 램은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식당주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만든다.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여 굶주림과 추위에 고통스러운 와중에서도 주머니에 숨겨두었던 돼지족발 하나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램의 모습에선 선지자 하박국의 감사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 그래픽 노블에서 또 한가지 재미있는 발견은 블루스 음악의 형식을 따랐다는 점 외에도 흑백의 대비를 살린 그림체라고 할 수 있다.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이미 알아채셨을테지만 그림체가 챕터 5 이전과 이후가 약간 다르다. 챕터4 까지는 흑백이 명료하게 대비를 이루었던 반면에 챕터 5이후에는 전체 면에서 흰 여백이 거의 사라진다. 대신에 그 자리는 회색이 차지하게 된다. 챕터5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직후 수사가 시작이 되고, 쫒기는 흑인과 쫒는 백인간의 추격전이 펼쳐지는데, 백인들의 피부에 드리워진 회색은 볼록한 이마 튀어나온 광대뼈와 두꺼운 입술이라는 흑인 전용의 스테레오타입이 아니라면 구분이 힘들 정도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볼록한 이마나 광대뼈마져도 백인들에게 비슷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대사나 이야기의 문맥으로 구분이 될 뿐이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가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픽 노블이기 때문에 독자도 색깔로 흑인과 백인을 구분할 수 밖에 없는데, 인간을 구분짓는 참된 기준은 그런 색깔이 아니라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그들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가는 곳마다 신앙인들밖에 없는 미국에서도 이렇게 인간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원인은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기도 했다는 것이다. 19세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성서를 자구 그대로 해석하여 흑인은 악마의 자손이라는 둥, 노예를 소유할 권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둥 하는 그야말로 아전인수격의 논리를 만들어내어 유포했고, 그것이 노예제를 뒷받침하는 튼튼한 종교적인 근거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노예제 찬성론자나 노예제 반대론자나 모두 성경을 근거로 저마다의 주장을 펼치며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램이 어린 시절 등불 아래서 읽는 성경구절은 아주 인상적이다.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앞부분을 낭독하는데..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책에 인용된 성경구절 하나하나가 가슴 깊이 파고드는 말씀들이다. 이 구절도 '종'의 신분이었던 흑인들이 하나님의 인도로 자유함을 얻었다는 이야기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결국 흑인이건 백인이건 복음을 알기 이전에는 모두 '죄'의 종의 신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종의 신분이었던 자가 복음을 빌미로 또 다른 종을 부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이겠는가.

 

먹을 것이 없어 씹다남은 돼지족발 하나에 감사하는 램. 그 비참한 상황 속에서 '저의 안식처가 되시는 주님'이라며 기도하는 모습은 인생이란 긴 여정을 순례자로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가 저런 것이 아닌가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의 표지를 보면 먹구름이 낀 하늘에 구름 틈 사이로 한줌 햇빛이 밝게 내리쬐고 있고, 그 아래에 새벽길을 기타통 하나만 손에 들고 떠나는 블루스맨의 모습이 검은 실루엣으로 그려져 있다. 그의 등 뒤에는 한그루 나무가 서 있고, 그는 조금 더 높은 언덕을 향하여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 했는데, 이 표지가 바로 그 말씀을 그려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램은 자신의 노래를 인정해준 가구점 주인을 찾아 길을 떠나지만, 그가 마음으로 계획했던 그 길은 고난과 시련의 여정을 거치며 더욱 신비로운 체험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신의 몸 하나 돌보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램은 친구를 사귀고,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한다.

 

"만약 내가 기도를 한다면 그건 살아날 수 있는 누군가를 위한 겁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총을 얻고자 죄인 된 몸으로 이렇게 기도드립니다. 비록 이 몸이 그리스도의 길에서 멀어져 있었지만

당신의 보좌 앞에 저를 낮추나이다. 자비와 동정의 왕이시여 당신의 무한한 지혜로 우리를 다스리는 주여 우리 모두 주님이 저희 영혼들 속에 넣어주신 거룩한 불꽃 때문에 하나하나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주님 제가 당신과의 약속을 깬 것을 압니다. 하지만 제 주위의 사람들이 이렇게 벌 받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아래 요한한복음 11장 41절 인용)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슴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부르시니. 나사로야 나오라."

 

살인 사건이라는 것은 이 이야기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다. 램은 어떤 이유에서건 쫓기는 신세가 되어야했고, 그것은 그 시대의 흑인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언제나 쫒기고 추방당하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칼라 퍼플'에서도 그러했듯이 비극으로 점철된 흑인 주인공의 인생. 하지만 그 마지막에 그 입술에 남는 것은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이다.

 

이 그래픽 노블은 '블루스 음악'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나의 경우 이 그래픽 노블을 읽은 후에 다시 보고파 진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와 '천년학'이었다. 기쁨과 슬픔이 한데 어우러진 인생의 여정길. 희망과 시련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그곳에서 판소리가 되었든 블루스가 되었든 주인공들이 음악으로 삶을 승화시키는 그 모습은 참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신앙인이라면 램 타일러의 여정을 통해서 삶에 큰 도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최근에 베스트 셀러에 올랐던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과 함께 신앙생활에 큰 활력을 불어넣어줄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픽 노블에 있어서는 '마우스(한글판 제목은 쥐)'와 '페르세폴리스'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좋을 작품이란 생각이 들고, 그리고 초기 블루스의 모습에 관심이 깊은 분이라면 다큐멘터리 영화인 '더 블루스' 시리즈를 함께 본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일단 올해 나온 그래픽 노블 중 최고의 강추작품이다. 

 

복음의 기차 (램 타일러)

이 땅의 고통을 말하고 주님의 사랑을 말하라

이 땅의 고통을 말하고 주님의 사랑을 지키세

이 땅의 고통을 말하고 주님의 사랑을 지키세

아..복음의 기차가 오고 있네 그대도 타지 않겠나?

그리고 이곳 시험과 두려움의 세상을 떠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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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친넘

    2009/07/29 14:27 [수정/삭제] [답글]

    순간 감자를 잃지 않는 순례자의 이야기로 봤음...

  2. BlogIcon killah5

    2009/07/30 15:40 [수정/삭제] [답글]

    그렇군요. 항상 그렇듯 리뷰 잘보았습니다. 이 그래픽노블 재미있을것같네요.

  3. 어린왕자

    2009/08/06 23:58 [수정/삭제] [답글]

    재미는 있을거 같은데..그림체가 ㅠㅠ 맘에....안들어서 고민중 ㅠ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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