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 이난나와 그녀의 자웅동체 하인 닌슈부르

Posted at 2009/08/10 23:04 // in 그래픽노블 특집 // by 부머


comicsworthreading에 실린 '이난나의 눈물' 플래시 트레일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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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의 기원'을 멋진 이야기로 바꾸어놓은 '플라톤의 향연'의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고대 그리스 하면 '동성애'로도 꽤 유명했지 않은가. 난다 긴다 하는 저명인사들은 저마다 동성 사이드킥을 갖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악감정은 없다. 어쨌든 시대상황은 그랬고, 동성애 만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상당히 많았다. 향연의 모임에 참석한 인물들도 거의가 동성애자였는데, 그 중에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가 있었다.

고대의 인간은 팔도 네개, 다리도 네개, 눈 코 입은 두개씩 붙어 있었다고 한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세서 신들은 인간이 혹시라도 신들의 세계를 탐내 덤벼들까 좀 떨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외모의 인간에는 세가지의 성(性)이 있었다. 두 가지는 짐작하다시피 '남성'과 '여성'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양성' 즉 '자웅동체'다.

인간들이 워낙에 위협적이다보니 신들의 우두머리 제우스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을 한다. 그의 주무기인 번개를 사용해서 이 네팔 네발이 달린 인간을 반쪽으로 쪼개버리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인간들은 모두 반쪽으로 갈라졌고 그 때부터 인간은 항상 나머지 반쪽을 그리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인간에게 '남자 동성애자' '여자 동성애자' '이성애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보면 동성애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본래 한몸이었던 어느 반쪽이 지구 어디에선가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참 아릅답지 않은가.

자웅동체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몇 있다. 이를테면 마징가 제트의 아수라백작도 그렇고. 최근에 9권까지 나온 닐게이먼의 그래픽노블 '샌드맨(Sandman)에 등장하는 '욕망(Desire)'도 그렇다. 과연 향연에 등장하는 제우스가 위협을 느꼈을 만큼 샌드맨의 욕망은 무서운 면이 있는 캐릭터다. '꿈'이 자신의 사랑인 '나다'를 찾기 위해 시련을 겪고 딜레마에 빠지고 약해졌던 것과 반대로 욕망은 그런 반쪽에 대한 갈망이 없기에 대신 다른 사람의 욕망을 먹고 살아간다.

또 다른 자웅동체의 인물로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닌슈부르'가 있다. 닌슈부르는 사실 신이라고 하기보다는 '신'의 하인 정도 되는 캐릭터다. 그래도 그냥 하인은 아니다. 나름 급수 높은 신의 하인이니 왠만한 하급신보다 나은 셈이다.

수메르 신화에 관해서는 '김산해'선생님이 쓴 여러 책들이 있는데, 특히 그 매력이 뭐냐하면 '쐐기문자'들에 대한 해독방식을 친절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어느정도 읽고 나면 나름 쐐기문자 몇단어 정도는 읽어내려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수메르 신화에서 최고신. 그러니까 이 우주를 낳은 태초의 신은 '남마'라고 한다. 남마는 대양인데 그녀에게서 하늘신 '안'과 땅의 신'키'가 태어났다.

하늘과 땅이 결합하면 그 사이에 자녀가 태어나는데, 거기서 태어난 것이 바로 공기, 바람의 신이다. 바람이 생김으로써 비로소 하늘은 하늘에 땅은 땅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계보로만 내려가면 바람의 신인 엔릴이 정통인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최고신의 지위는 다른 이가 누렸다.

고대의 신들은 소위말해 '콩가루' 그러니까 부모고 자식이고 개념이 별로 없다. 남마와 안 사이에 '엔키'라는 신이 태어나는데, 엔키는 지혜의 신이었고 '물'의 신이었다. 어떻게보면 바람의 신 엔릴은 번개를 다스리는 제우스를 닮았고 엔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닮았다. 어찌됐든 수메르 신화에서 엔키는 양 어깨에 강물줄기를 달고 주변에 물고기를 거느린 조각으로 표현이 된다.

그런데 최고신도 자기 혼자서 최고신이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엔키가 최고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엔키는 최초로 땅에 강림하여 도시 '에리두'를 세운 신이었다. 엔키는 인간을 창조하고 대홍수에서 인간을 구원하였으며 인간의 모든 삶과 문화를 관장하는 총체적인 질서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메'의 주인이었다. '메'는 일종의 신물이다. 하지만 메는 단일한 하나의 물건이 아니라 여러개 물건을 가리키는 일종의 집합명사다.

재미있는 것은 메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실행'을 해야된다는 사실. 그러니까 메를 가지고 가서 어떤 곳에서 '작동'을 시키면 그곳은 메의 힘을 받아서 '낙원'으로 변한다.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언어문제를 해결하고 그 외에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낙원이 창조되는 셈이다. 메가 작동되는 곳에는 동물도 천적간에 서로 잡아먹지 않고, 고통도 없었으며, 도둑이 전쟁도 없고, 슬픔도 없었다고 한다.

완전한 낙원! 하지만 이런 곳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별종들이 언제나 있는 법이다. 마블 코믹스에서 실버서퍼가 이를테면 그 대표적인 캐릭터다. 실버서퍼는 과학이 이룩한 최고의 낙원에서 아무 할일이 없는 자신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모험을 찾아 갈락투스를 추종하기 시작했다. 모험을 위해서 영혼을 판 캐릭터. 모험을 위해서라는 어떤 짓도 마다치 않는 캐릭터가 등장하니 그가 바로 '이난나' 되시겠다. 이난나는 수메르 신화의 최고신. 여신이다.

그녀는 엔키에게서 최고의 힘의 결정체인 '메'를 훔쳐낸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난나가 훔칠 마음을 먹긴 했으나 술에 취해서 거드름을 피우며 메를 전부다 내어준 것은 최고신 엔키였다. 그러니까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이놈의 술이 문제다. 법으로 따진다면야 술이 만취가 된 상태에서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 하는 계약은 어떻게 뒤집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게 어디있는가. 이난나는 이때다 하고 엔키에게 메를 건네받고 냅다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하는데, 하늘의 배를 타고 자기의 영토인 우르크로 최대한 빨리 도망가야 하게 되었다.

잠시 후 잠에서 깬 엔키는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모든 부하들을 동원하여 이난나를 뒤쫒고 대추격전이 펼쳐진다. 말괄량이 이난나는 자신의 성 '우루크'에 들어가기 힘들게 생겼다. 그 때에 나타난 인물이 바로 이난나의 충복인 '닌슈부르'. 닌슈부르는 엔키의 심복인 이시무드 패거리와 싸워서 이난나를 보호하고 이난나의 우르크 입성을 완수시킨다. 그제서야 엔키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난나를 메의 주인으로 인정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이 여신은 자기의 도시 우르크의 왕인 길가메시를 사랑하게 되어서 열렬한 구애작전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길가메시가 누군가. 수메르 신화 최고의 영웅. 제아무리 여신일 지언정 그의 눈에 안차면 그자리에서 퇴짜였다. 이난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길가메시를 죽여버리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래서 하늘신 안에게 부탁해서 하늘의 황소 구갈안나를 데리고 와 길가메시를 공격하게 만드는데. 구갈안나는 저승의 여왕인 에레쉬키갈의 남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난나의 계획은 틀어져버렸으니 구갈안나가 길가메시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되었으니 이난나의 저승여행이 순탄했을리 있었겠는가. 그녀는 저승 여행을 떠난 즉시로 저승문 앞에서 행장을 모두 벗기워 벌거숭이가 된 채로 어더맞아서 나무못에 걸린 고깃덩어리 신세가 되어버린다.

이런 이난나를 구해내기 위해 사방 팔방으로 구명운동을 펼친 끝에 결국 엔키의 도움을 받아 이난나를 부활시킨 것도 바로 충복 닌슈부르였다.

여담으로 바로 앞 포스트에서 시바신이 남근으로 숭배되었던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시바신 역시 자웅동체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8월10일, 작성자 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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