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닌 - 개와 늑대의 시간
동트기 전 빛과 어둠이 묘하게 교차하는 그 때에 지평선에서 나를 향해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마치 내가 기르는 개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시간.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이 시간을 가리켜 바이킹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프랭크 밀러의 로닌은 일본의 봉건시대 사무라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무라이. 그는 이름이 없다. 이름이 없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이방인 처럼 느껴진다. 그는 오직 자신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할 뿐이다. 주인의 이름이 그의 이름이며, 주인이 죽으면 그도 죽는다. 그는 단지 그림자일 뿐이다. 주인에겐 검이 한 자루 있다. 사람의 피를 마시며 힘을 얻는 이 검의 본래 주인은 악령 아가트이다. 아가트는 검을 되찾기 위해 주인을 로닌의 주인을 죽인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수수께기가 생겨난다. 악령 아가트를 죽이려면 먼저 피의 검으로 하여금 무고한 사람의 피를 마시게 해야 된다는 것. 악을 씻어내기 위해서 순수한 제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시간은 수백년을 훌쩍 건너뛰어 멀고 먼 미래.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파멸한 도시. 이 도시에는 여러부류의 사람이 살아간다. 파멸한 세계에서 여전히 전쟁의 꿈을 꾸는 자들.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 이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건물 폐허 사이에서 누더기를 걸친 채 서로 약탈하며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버려진 하수도 지하에서 쓰레기를 먹고 살아가는 돌연변이들. 이들은 책을 읽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도시 속에는 거대한 유기체 컴퓨터인 '버고'가 있고, 그 안에는 사지가 없고 몸뚱이 뿐이지만 엄청난 염동력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공 '빌리'가 있다.
날 때부터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육체적 장애로 다른 사람과 차별이 생기지만, 사회 속에서 그들은 장애인으로 분류되고 늘 차별에 시달려야 한다. 그리고 차츰 시간이 흐를 때마다 그 '차별'이라는 칼이 그들의 팔을 떼어내고 다리를 떼어낸다. 결국은 팔다리가 없는 고립된 사람으로 만드는 셈이다. 어린 시절 빌리도 그런 삶을 살았다. 원치않는 괴롭힘과 편견에 시달리면서 결국은 부모에게마저도 '괴물'이라 분리며 격리되어 버린다. 그는 이름이 없는 세상의 이방인이었다. 컴퓨터 '버고'는 그런 빌리의 정신 속에서 '로닌'을 발견한다.
이야기는 현세에 부활한 '로닌'과 '아가트'의 싸움으로 관심을 유도해서 몰고가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된 '버고'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빌리'를 이용해 인류를 멸망시키고 지구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려고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밝혀진다. 버고는 로닌을 이용해 빌리가 내면에 가둔 엄청난 염동력의 잠재력을 각성시키고자 했던 것이고, 빌리는 자기가 이렇게 팔다리가 잘린채 살아가는 것처럼 세상의 팔다리를 잘라버리고픈 복수심과 자유롭게 다니고픈 욕망, 그리고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인 케이시에 대한 사랑으로 '로닌'이라는 판타지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마치 개와 늑대의 시간이 만들어낸 그림자처럼 이야기가 흐르면서 선한 자와 악한 자의 역할이 뒤바뀐다. 슈퍼 컴퓨터인 버고는 모든 상황의 변수를 다 예측해서 철저하게 계산된 대로 계획을 밀고간다. 로닌을 각성시키고, 그를 다시 불러들이고, 그를 통해 새로운 유기컴퓨터를 만들고... 하지만 버고이 계산 밖에 존재하던 것이 바로 케이시. 마치 피의 검으로 아가트를 죽이기 위해 등을 돌리고 자신의 배에 검을 꽂아넣었던 로닌처럼. 마지막 순간 빌리를 구하기 위해 적들을 뚫고 온 케이시는 그에게 사무라이의 검을 주며 할복하라고 말한다. 빌리 아니 로닌은 그 검으로 자신의 배를 찢고, 버고의 마지막 발악에도 불구하고 아쿠라리우스는 대 폭발을 일으킨다.
이 만화책에 대해서 채색이나 모호한 내용에 대해 비판도 있는데, 이것은 프랭크 밀러에겐 일종의 실험작이기도 했다. 그는 좌우로 혹은 상하로 길게 나누어지는 칸분할이나, 마지막 장에 세번이나 접은 영화장면같이 큰 그림도 그려넣었는데, 그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 된 것처럼, 이 작품도 마치 영화화를 의식한 듯 와이드 스크린에 대한 실험들이 들어있는 것 같다. 또 한가지는 마지막의 열린 결말. 이 작품의 갑작스런 결말과 결말 장면에 갑자기 등장한 인물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마지막에 프랭크 밀러는 그려넣지 않은 로닌과 케이시의 말풍선을 직접 그려넣고 자기 나름의 대사를 적어보는 것도 이런 열린 결말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종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그렇듯. 누군가가 죽지만 그에게서 희망이 잉태되고, 누군가가 희생하지만 그로 인해서 누군가는 명예와 생명을 되찾는다. 세상은 이렇게 누군가의 희생과 피를 튀기는 처절한 싸움 위에서 조금씩 발전해간다. 아쿠라이우스는 인류에게 꿈이었겠지만, 너무나 위대한 꿈을 꾼 나머지 그 꿈에 가리워진 지하세계, 돌연변이들이 서로의 팔다리를 뜯어먹고 살아가는 그 세계를 못볼 때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컴플렉스로 인해 사랑한다 고백하지 못하고 아파하는 이도 있고, 순수한 꿈을 꾸던 자가 어느 순간 타락하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때도 있다. 피의 검은 그런 자들이 흘린 피를 먹고 힘을 얻는다. 주인의 복수를 한 로닌은 아무런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주인의 곁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배를 긋는다. 악령 아가트는 무고한 자의 피를 먹은 검에 의해 다시금 좌절한다.
사실 미국만화의 매력중의 하나가 컬러풀한 그림, 의성어 의태어가 난무하는 화려함보다는 한패널 한패널 영화처럼 긴장감을 주었다 놓았다 하는 연출력, 인물들의 생동감, 현실 도피적인 흥미위주의 판타지가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다. 이 작품은 다소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아마 이런 것들을 기대하고 미국만화를 보는 독자라면 '강추'해도 좋을 만한 훌륭한 읽을거리라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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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9 23:38 [수정/삭제] [답글]
"로닌"에게도 이런면이 있었군요. 놀랍습니다. 단순한 칼싸움 수준이 아니었네요. 미래에 대한 해석도 마음에 듭니다.
2012/01/11 04:07 [수정/삭제] [답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한다
2012/01/13 05:12 [수정/삭제] [답글]
멋진 작품을 계속